사람과 동물처럼 미토콘드리아를 가진 생물은 영양분에서 꺼낸 전자를 전자전달계를 거쳐 산소에 전달하면서 ATP를 만든다. 세균에는 미토콘드리아가 없지만 세포막에 전자전달계를 갖추고 비슷한 원리로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 그런데 산소가 거의 없는 호수 바닥이나 퇴적층에서는 산소를 최종전자수용체로 사용하는 호흡을 계속하기 어렵다.Shewanella oneidensis MR-1은 이런 환경에서 철(III) 산화물과 망가니즈(IV) 산화물 같은 물질에 전자를 전달하며 성장할 수 있다. 금속 자체를 영양분처럼 먹는 것은 아니다. 유기물을 산화하면서 얻은 전자를 세포 밖의 금속 산화물에 넘기고, 그 과정에서 형성되는 전기화학적 기울기를 이용해 ATP를 합성한다.MR-1 균주는 1980년대 미국 뉴욕주 오나이다호의 퇴..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면 물이 얼기 시작하고 생명체의 화학반응은 느려진다. 세포막을 이루는 지질은 굳어지고 단백질의 움직임도 줄어든다. 얼음이 형성되면서 남은 액체의 염분이 높아지면 세포에서는 물이 빠져나갈 수 있다. 그런데 북극 해빙에서 발견된 Psychromonas ingrahamii는 이러한 조건에서도 멈춰 있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영하 12℃에서 세포 수를 늘리며 성장할 수 있다.이 세균의 표준 균주인 37T는 1991년 미국 알래스카주 포인트배로 인근 엘슨라군에서 채취한 해빙 코어에서 분리됐다. 배로의 공식 지명은 현재 우트키아그비크로 바뀌었다. 연구진은 해빙과 바닷물이 만나는 부분에서 저온성 미생물을 조사하다가 크기가 비교적 큰 막대 모양 세균을 확보했다.영하 성장을 다룬 연구는 2004년에 먼..
북대서양 수심 약 3,800미터에 가라앉은 타이타닉의 철제 표면에는 녹슨 고드름처럼 늘어진 구조가 붙어 있다. 영어로 러스티클이라고 불리는 이 구조는 단단한 금속 덩어리가 아니다. 철 산화물과 수산화물, 침전된 염류, 유기물과 미생물 세포 등이 섞인 다공성 부식 생성물이다.1991년 러시아 유인 잠수정 미르를 이용한 탐사에서 타이타닉의 러스티클 시료가 수집됐다. 연구진은 이 시료에서 여러 세균을 배양했고, 그중 BH1T 균주가 기존에 알려진 종과 다르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연구 결과는 2010년 《International Journal of Systematic and Evolutionary Microbiology》에 발표됐으며, 난파선의 이름을 따서 Halomonas titanicae라는 학명이 붙었다...
하와이 근해의 얕은 모래 바닥에는 몸통 길이가 몇 센티미터인 하와이 짧은 꼬리오징어 Euprymna scolopes가 산다. 낮에는 모래 속에 몸을 숨기고 쉬다가 밤이 되면 작은 새우를 사냥하기 위해 움직인다. 이 오징어의 배 쪽에는 빛을 내보내는 발광기관이 있지만 실제 발광 반응을 일으키는 주체는 오징어의 세포가 아니다.발광기관 안에는 Aliivibrio fischeri라는 해양 세균이 높은 밀도로 산다. 과거 논문에서는 Vibrio fischeri라는 이름으로 기록됐다. 2007년 유전적·생화학적 비교 연구를 거쳐 Vibrio속에서 새로 제안된 Aliivibrio속으로 옮겨졌으며, 현재 인정되는 학명은 Aliivibrio fischeri다. 다만 오랫동안 축적된 공생과 발광 연구에서는 지금도 Vibr..
렌즈와 현미경의 발명은 사람의 눈으로 구별할 수 없던 미생물의 세계를 열었다. 그래서 세균은 현미경으로만 볼 수 있을 만큼 작다는 인식이 생겼지만 여기에도 예외가 있다. 초식성 양쥐돔류의 장에서 발견되는 Epulopiscium 계열 세균은 길이가 수백 마이크로미터에 이른다. 큰 세포는 길이가 600마이크로미터를 넘고 폭은 약 80마이크로미터에 이를 수 있어 맨눈으로도 작은 점처럼 구별된다.이 거대 미생물은 1985년 홍해에서 잡힌 갈색양쥐돔 Acanthurus nigrofuscus의 장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과학계에 처음 보고됐다. 몸집이 크고 내부에 작은 세포처럼 보이는 구조가 있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분류가 불분명한 원생생물로 여겨졌다. 1993년 연구진이 작은소단위체 리보솜 RNA 유전자를 분석하고 세..
1956년 미국 오리건주의 연구진은 감마선을 이용해 통조림 고기를 살균하는 실험을 진행하고 있었다. 미생물이 살아남기 어려운 선량으로 처리했는데도 고기가 부패했고, 조사 과정에서 붉은색 집락을 만드는 세균이 분리됐다. 이 세균은 처음에 Micrococcus radiodurans라는 이름으로 보고됐지만 세포 외피와 계통학적 차이가 확인되면서 1981년 Deinococcus radiodurans로 재분류됐다.D. radiodurans는 둥근 세포가 두 개 또는 네 개씩 붙은 형태로 흔히 관찰되는 비운동성 호기성 세균이다. 붉은색을 띠는 데이노잔틴 계열의 카로티노이드 색소를 만들며, 현재 Deinococcota문과 Deinococcaceae과에 분류된다. 널리 연구되는 R1 균주는 사람에게 질병을 일으키는 대..
햇빛이 전혀 닿지 않고 지표에서 내려온 유기물도 거의 없는 지하 2.8킬로미터의 암반수에서 독특한 생태계가 발견됐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음포넹 금광의 깊은 균열에서 채취한 물을 분석한 연구진은 유체에 존재하는 미생물의 99.9%를 넘는 비율이 하나의 세균 계통으로 구성된 것으로 추정했다. 그 세균에 붙은 이름이 Candidatus Desulforudis audaxviator다.audax viator는 라틴어로 ‘대담한 여행자’를 뜻한다. 쥘 베른의 소설 《지구 속 여행》에 등장하는 라틴어 문구에서 이름을 가져왔다. 이 세균은 처음 발견됐을 당시 순수배양 없이 환경에서 얻은 유전체를 바탕으로 이름이 제안됐기 때문에 Candidatus가 붙었다. 2019년에는 서시베리아 지하 대수층에서 분리된 가까운 계통인 ..
사람의 세포에 있는 마이토콘드리아는 영양분에서 나온 전자를 전자전달계로 이동시키고, 마지막에 산소로 넘기면서 ATP 생산에 필요한 양성자 농도 차이를 만든다. 그런데 산소가 거의 없고 물에 녹지 않는 산화철이 널려 있는 진흙에서는 산소를 최종전자수용체로 사용하는 방법이 통하지 않는다. Geobacter sulfurreducens는 이런 환경에서 전자를 세포 바깥으로 이동시킨 뒤 외부의 철 광물이나 전극에 전달하는 방식으로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G. sulfurreducens의 기준 균주 PCA는 미국 오클라호마주 노먼에 있는 탄화수소 오염 배수로의 표층 퇴적물에서 분리됐다. 1994년 종을 설명한 논문이 발표됐고, 학명은 1995년 국제적인 세균 명명 절차를 통해 유효하게 공표됐다. PCA는 산소 없이..
세균은 주변의 영양분을 흡수하거나 동식물의 세포에 감염을 일으키는 존재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다른 세균을 먹잇감으로 삼아 살아가는 세균도 있다. Bdellovibrio bacteriovorus는 주로 그람음성 세균을 찾아 표면에 달라붙은 뒤, 바깥막과 세포막 사이의 주변세포질로 침입한다. 그곳에서 먹잇감의 물질을 분해해 성장하고 여러 자손으로 나뉜 다음 남은 세포 외피를 뚫고 밖으로 나온다.속명 Bdellovibrio는 거머리를 뜻하는 그리스어와 굽거나 진동하는 세균을 가리키는 말에서 유래했으며, 종소명 bacteriovorus는 세균을 먹는다는 의미다. 하인츠 슈톰프와 모티머 스타는 1963년 토양에서 분리한 이 세균을 새로운 속과 종으로 보고했다. 현재 B. bacteriovorus는 유효하게 발표..
세균이 철을 이용해 몸 안에 작은 자석을 만들 수 있을까? 플라스틱을 분해하거나 황과 철 화합물에서 에너지를 얻는 세균은 비교적 널리 알려졌지만, 자성 광물을 직접 만드는 세균도 존재한다. 자연의 연못과 퇴적층에는 철 이온을 흡수해 세포 안에 자철석 결정을 만들고 지구 자기장의 방향을 따라 이동하는 자기주성 세균이 살고 있다. 대표적인 연구 대상이 나선형 세균인 Magnetospirillum magneticum AMB-1이다.여기서 철을 이용한다는 말은 철을 주된 먹이나 에너지원으로 삼는다는 뜻이 아니다. AMB-1은 배양 조건에서 숙신산 같은 유기물을 탄소원으로 사용할 수 있으며, 흡수한 철로 자성 광물인 자철석을 만든다. 철을 산화해 에너지를 얻는 철 산화 세균과는 구분해야 한다.이 균주의 학명에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