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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하에서도 성장하는 박테리아, 사이크로모나스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면 물이 얼기 시작하고 생명체의 화학반응은 느려진다. 세포막을 이루는 지질은 굳어지고 단백질의 움직임도 줄어든다. 얼음이 형성되면서 남은 액체의 염분이 높아지면 세포에서는 물이 빠져나갈 수 있다. 그런데 북극 해빙에서 발견된 Psychromonas ingrahamii는 이러한 조건에서도 멈춰 있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영하 12℃에서 세포 수를 늘리며 성장할 수 있다.

이 세균의 표준 균주인 37T는 1991년 미국 알래스카주 포인트배로 인근 엘슨라군에서 채취한 해빙 코어에서 분리됐다. 배로의 공식 지명은 현재 우트키아그비크로 바뀌었다. 연구진은 해빙과 바닷물이 만나는 부분에서 저온성 미생물을 조사하다가 크기가 비교적 큰 막대 모양 세균을 확보했다.

영하 성장을 다룬 연구는 2004년에 먼저 발표됐고, 2006년에는 Psychromonas ingrahamii라는 종명이 정식으로 제안됐다. 종소명 ingrahamii는 저온 미생물학 연구에 기여한 미생물학자 존 잉그레이엄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이 세균은 감마프로테오박테리아 계통에 속하는 그람음성 비운동성 막대균이며, 산소가 있을 때의 호흡과 산소가 제한된 조건에서의 발효를 모두 이용할 수 있는 통성혐기성 세균이다.

영하 12℃에서 자란다는 것은 무엇을 뜻할까

영하 12℃라는 수치는 얼어붙은 세포가 오랫동안 죽지 않고 남아 있었다는 뜻이 아니다. 2004년 연구진은 같은 조건에서 배양한 여러 시료의 세포 수와 단백질량이 시간에 따라 증가하는지 조사했다. 그 결과 영하 12℃에서도 지수적으로 증식한다는 사실이 성장곡선으로 확인됐다.

다만 성장 속도는 매우 느렸다. 영하 12℃에서 세대시간은 약 240시간, 즉 10일이었다. 세대시간은 한 세포 집단이 두 배로 늘어나는 데 걸리는 시간이다. 이 결과는 논문이 발표된 2004년 당시 성장곡선으로 입증된 생물의 최저 성장 온도로 보고됐다. 이후 더 낮은 온도에서 증식하는 다른 미생물 연구도 발표됐으므로 이를 현재까지 깨지지 않은 절대적인 최저 기록으로 소개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P. ingrahamii 37T는 영하 12℃부터 영상 10℃까지 성장하는 것으로 확인됐고 15℃에서는 자라지 않았다. 영하 15℃에서는 배양액 자체가 얼어 실험을 계속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이 세균의 실제 최저 성장 온도가 정확히 영하 12℃라고 단정할 수도 없다. 확인된 범위의 아래쪽 끝이 영하 12℃라는 의미에 가깝다.

해빙 전체가 단단한 고체 상태인데 세균이 얼음 결정을 뚫고 성장하는 것은 아니다. 바닷물이 얼면 물 분자가 먼저 얼음 결정에 들어가고 염류는 얼지 않은 물에 농축된다. 용액 속 입자가 많아지면 액체의 어는점이 낮아지는 어는점 내림이 일어나므로 해빙 안에는 영하의 온도에서도 액체 상태를 유지하는 미세한 염수 통로가 생길 수 있다. 세균은 이 액체 공간에서 물질을 흡수하고 대사를 이어 간다.

차가워진 세포막과 효소는 어떻게 계속 움직일까

온도가 내려가면 분자의 평균 운동에너지가 감소하고 활성화에너지를 넘는 분자의 비율도 작아진다. 화학반응 속도가 온도에 따라 달라지는 관계는 아레니우스 식으로 설명할 수 있다. 생명체 안의 효소반응도 예외가 아니어서 낮은 온도에서는 기질과 효소가 효과적으로 반응하는 횟수가 감소한다.

세포막에도 변화가 생긴다. 온도가 낮아지면 인지질의 지방산 사슬들이 촘촘히 정렬돼 막이 굳기 쉽다. 막이 지나치게 단단해지면 영양분 수송, 이온 농도 조절과 에너지 생산에 관여하는 막단백질이 제대로 작동하기 어렵다. 저온 적응 미생물이 세포막에 불포화지방산을 많이 사용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불포화지방산의 이중결합은 탄소 사슬을 꺾이게 만들어 지방산들이 빽빽하게 쌓이는 것을 방해한다. P. ingrahamii의 세포 지방산을 분석한 결과에서는 탄소 16개와 이중결합 하나를 가진 16:1ω7c가 전체 지방산의 약 67%를 차지했다. 포화지방산인 16:0은 약 18.7%였다. 이러한 조성은 낮은 온도에서도 세포막이 필요한 유동성을 유지하는 데 유리하다.

저온에서 작동하는 효소는 일반적으로 구조적 유연성이 높아 적은 열에너지로도 활성 부위의 형태를 바꾸고 기질과 결합할 수 있다. 그러나 유연성이 높으면 온도가 상승했을 때 구조가 쉽게 불안정해지는 경우도 있다. 이것은 저온 적응 효소에서 자주 관찰되는 경향이지 모든 효소에 똑같이 적용되는 규칙은 아니다.

P. ingrahamii의 세린 하이드록시메틸전이효소를 분석한 연구에서는 이 효소가 낮은 온도에서도 활성을 나타내고 여러 기질에 반응하는 특성이 확인됐다. 세린 하이드록시메틸전이효소는 세린과 글라이신 사이의 전환에 관여하며, 탄소 원자 한 개 단위의 대사와 연결된다. 이처럼 개별 효소의 구조와 반응속도를 조사하면 세균 전체가 저온에서 대사를 유지하는 방법을 분자 수준에서 이해할 수 있다.

얼음 속에서는 추위와 높은 염분을 함께 견뎌야 한다

해빙 미생물이 마주하는 문제는 낮은 온도만이 아니다. 바닷물이 얼면서 염류가 남은 액체에 몰리면 염수 통로의 염분 농도가 급격히 높아질 수 있다. 세포 밖의 용질 농도가 세포 안보다 높아지면 삼투 현상에 따라 물이 세포 밖으로 이동한다. 반대로 해빙이 녹으면 주변 염분이 빠르게 낮아질 수 있다.

P. ingrahamii는 염화나트륨 농도 약 1~12%에서 성장했고, 20%에서는 약한 성장을 보였지만 소금이 전혀 없는 조건에서는 자라지 않았다. 바닷물과 해빙 염수에 적응한 세균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결과다. 세포는 이온 수송체와 세포 기능을 크게 방해하지 않는 적합용질을 이용해 세포 내부의 삼투압과 이온 농도를 조절할 수 있다.

2008년에 보고된 유전체는 약 456만 염기쌍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원형 염색체다. 여기에는 지방산 합성, 저온에서의 단백질 합성과 접힘, 물질 수송, 삼투압 조절 등에 관여할 가능성이 있는 여러 유전자가 들어 있다. 다만 유전체에서 특정 유전자를 발견했다는 사실만으로 그 유전자가 자연의 해빙에서 언제 얼마나 작동하는지까지 확인되는 것은 아니다. 실제 기능은 유전자 발현과 단백질 활성 실험을 통해 따로 검증해야 한다.

이 세균은 세포 안에 두 형태의 기체 소낭도 만든다. 기체 소낭은 지질막으로 둘러싸인 공기방울이 아니라 기체는 통과시키고 액체는 막는 단백질 껍질 구조다. 여러 수생 미생물에서는 세포의 부력을 조절해 빛이나 산소, 영양분이 적절한 깊이로 이동하는 데 이용된다.

그러나 P. ingrahamii는 편모를 이용해 헤엄치는 세균이 아니며, 해빙 속 기체 소낭이 자연환경에서 정확히 어떤 이점을 주는지는 충분히 밝혀지지 않았다. 얼음 내부의 염수 통로에서 세포의 위치를 유지하거나 미세한 수직 이동에 관여할 가능성은 있지만, 확인된 구조와 아직 검증되지 않은 기능 가설을 구분해야 한다.

저온 세균의 효소가 모두 저온 산업에 적합한 것은 아니다

낮은 온도에서 활성이 높은 효소는 식품 가공, 세제, 의약품 합성과 저온 환경 정화 분야에서 관심을 받는다. 공정을 높은 온도로 가열하지 않아도 반응을 진행할 수 있고, 열에 약한 원료의 손상을 줄일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온 세균에서 유래했다는 사실만으로 그 세균의 모든 효소가 낮은 온도에서 가장 잘 작동하는 것은 아니다.

P. ingrahamii의 L-할로산 탈할로젠효소가 그 사례다. 이 효소는 할로젠이 붙은 짧은 유기산에서 할로젠 원자를 제거하는 반응을 촉매한다. 연구진은 해당 유전자를 대장균에서 발현해 효소를 분리한 뒤 여러 기질에 대한 반응을 조사했다. 효소는 모노브로모아세트산과 모노클로로아세트산 등에 활성을 보였고 유기용매에서도 비교적 안정했다.

흥미롭게도 이 효소의 최적 활성 온도는 약 45℃였다. 영하에서 성장하는 세균에서 유래했지만 전형적인 저온 활성 효소로 분류하기 어려운 결과다. 세균 한 종의 성장 가능 온도와 그 안에 들어 있는 개별 효소의 최적 반응 온도가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준다. 산업적 생물촉매 후보로서의 가능성은 제시됐지만 생산성, 기질 범위와 공정 안정성을 검증해야 실제 활용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

영하의 염수에서 세포분열이 가능하다는 사실은 화성의 염수 환경이나 얼음 위성 내부처럼 낮은 온도에서 액체 물이 존재할 가능성을 검토할 때 지구의 비교 사례로 활용될 수 있다. 그렇다고 북극 세균이 외계 환경에서 그대로 성장할 수 있거나 외계 생명체가 존재한다는 증거가 되는 것은 아니다. 온도뿐 아니라 압력, 방사선, 염의 종류, 산성도와 에너지원이 모두 맞아야 생명 활동을 유지할 수 있다.

P. ingrahamii의 영하 성장은 생명체의 한계를 온도계의 숫자 하나로 판단할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어는점 내림으로 액체 물이 남고, 불포화지방산이 세포막의 유동성을 지키며, 저온에서도 작동하는 대사 반응과 삼투압 조절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화학을 가르치는 입장에서 보면 교과서에서 각각 배우는 용액의 총괄성, 반응속도, 분자 구조와 산화·환원 대사가 실제 생명체 안에서 하나의 생존 조건으로 연결되는 사례라는 점이 특히 인상적이다.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