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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사선으로 DNA가 손상돼도 살아남는 데이노코쿠스

 

1956년 미국 오리건주의 연구진은 감마선을 이용해 통조림 고기를 살균하는 실험을 진행하고 있었다. 미생물이 살아남기 어려운 선량으로 처리했는데도 고기가 부패했고, 조사 과정에서 붉은색 집락을 만드는 세균이 분리됐다. 이 세균은 처음에 Micrococcus radiodurans라는 이름으로 보고됐지만 세포 외피와 계통학적 차이가 확인되면서 1981년 Deinococcus radiodurans로 재분류됐다.

D. radiodurans는 둥근 세포가 두 개 또는 네 개씩 붙은 형태로 흔히 관찰되는 비운동성 호기성 세균이다. 붉은색을 띠는 데이노잔틴 계열의 카로티노이드 색소를 만들며, 현재 Deinococcota문과 Deinococcaceae과에 분류된다. 널리 연구되는 R1 균주는 사람에게 질병을 일으키는 대표적인 병원균이 아니라 방사선과 산화 스트레스에 대한 생물의 대응을 연구하는 모델 세균이다.

D. radiodurans가 방사선을 맞아도 DNA를 손상 없이 보존하는 것은 아니다. 높은 선량의 이온화 방사선은 이 세균의 염색체도 수백 조각으로 끊을 수 있다. 이 세균의 강점은 손상을 완전히 피하는 능력보다 복구에 필요한 단백질의 기능을 보호하고, 흩어진 DNA 조각을 다시 연결할 수 있는 세포 환경을 유지하는 능력에 있다.

방사선보다 건조한 환경이 먼저였다는 가설

이온화 방사선은 원자와 분자에서 전자를 떼어낼 만큼 큰 에너지를 지닌다. 방사선이 DNA에 직접 에너지를 전달하면 가닥이 끊어질 수 있다. 세포 안에서 대부분을 차지하는 물과 반응하면 수산화 라디칼과 같은 반응성이 높은 활성산소종이 생기고, 이 물질들이 DNA와 단백질, 세포막을 산화한다.

배양 조건과 세포의 성장 단계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D. radiodurans는 약 5킬로그레이의 감마선을 받은 뒤에도 생존율이 거의 감소하지 않는 것으로 보고됐다. 1그레이는 물질 1킬로그램이 방사선 에너지 1줄을 흡수한 양이다. 5킬로그레이는 5,000그레이에 해당한다. 이 수치는 특정 실험 조건에서 얻은 결과이므로 모든 균주와 생장 상태에서 동일한 생존율을 보인다는 뜻은 아니다.

자연환경에서는 수천 그레이의 방사선에 반복해서 노출될 장소가 흔하지 않다. 그래서 이 세균의 내성이 강한 방사선 환경에 직접 적응한 결과라기보다 건조 스트레스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발달했을 가능성이 제시됐다. 세포가 심하게 마르면 DNA 이중가닥 절단과 단백질 산화가 발생한다. 건조 뒤 다시 수분을 얻었을 때 손상된 세포를 복구하는 체계가 방사선으로 생긴 손상에도 효과적으로 작동했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D. radiodurans가 건조뿐 아니라 자외선과 과산화수소 등 여러 산화 스트레스에도 강하다는 사실은 이 가설과 잘 맞는다. 그러나 건조 내성이 방사선 내성의 진화적 기원이라는 설명은 실험으로 완전히 확정된 결론이 아니다. 두 스트레스가 비슷한 손상을 만들고 공통된 보호 체계를 이용한다는 근거를 바탕으로 제시된 유력한 가설로 이해해야 한다.

방사선에 강하다는 말이 모든 극한 조건을 견딘다는 뜻도 아니다. 온도와 산도, 영양 상태가 적절하지 않으면 성장하지 못하고, 방사선량이 계속 높아지면 생존율도 감소한다. 이 세균의 특성은 파괴되지 않는 몸이 아니라 특정 종류의 손상을 견디고 복구하는 능력에 가깝다.

망간은 DNA보다 복구 단백질을 지키는 데 기여한다

염색체가 끊어진 뒤 이를 고치려면 DNA 중합효소와 뉴클레이스, 재조합 단백질 같은 여러 효소가 정상적으로 작동해야 한다. DNA를 수리할 설계도가 남아 있더라도 작업을 수행할 단백질이 활성산소에 의해 변형되면 복구는 진행될 수 없다.

2007년 여러 세균의 방사선 내성을 비교한 연구에서는 방사선에 강한 세균일수록 세포 안의 망간과 철의 비율이 높고, 방사선 조사 후 단백질 산화가 적은 경향이 확인됐다. 초기 DNA 손상량보다 단백질 산화 정도가 생존율과 더 밀접하게 연결된다는 결과도 나왔다. 이는 방사선 내성을 이해할 때 DNA 복구 유전자뿐 아니라 그 복구 단백질을 보호하는 화학적 환경도 살펴야 한다는 뜻이다.

세포 안의 망간은 혼자서 방사선을 막는 금속 갑옷처럼 작동하지 않는다. 망간 이온은 인산염과 작은 펩타이드, 여러 대사물질과 상호작용하며 단백질에 피해를 주는 활성산소 반응을 줄이는 데 기여하는 것으로 연구되고 있다. 반면 철은 과산화수소와 반응해 반응성이 큰 수산화 라디칼을 만드는 펜톤 반응에 참여할 수 있다. 따라서 높은 망간·철 비율은 단순한 금속 함량 차이가 아니라 세포 안에서 일어나는 산화·환원 반응의 방향과 연결된다.

데이노잔틴을 비롯한 카로티노이드 색소와 카탈레이스, 초과산화물 불균등화효소 같은 항산화 효소도 산화 손상을 줄이는 데 참여한다. 어느 한 물질이 방사선 내성을 전부 설명하는 구조가 아니라 작은 항산화 물질, 금속 이온, 효소와 대사 조절 체계가 함께 작동한다.

D. radiodurans의 세포 외피도 일반적인 그람양성 세균과 다르다. 염색에서는 그람양성 반응을 보이지만 두꺼운 펩티도글리칸층과 바깥막에 해당하는 층을 포함한 복잡한 다층 외피를 지닌다. 독특한 외피가 여러 환경 스트레스에 영향을 줄 가능성은 있지만 강한 방사선 내성을 세포벽 하나로 설명할 수는 없다.

수백 조각으로 끊어진 염색체를 다시 연결하는 과정

D. radiodurans R1의 전체 유전체는 약 328만 염기쌍이며 두 개의 염색체와 하나의 메가플라스미드, 하나의 작은 플라스미드로 구성된다. 세포 한 개에는 성장 단계에 따라 유전체 사본이 여러 개 존재할 수 있다. 같은 서열의 사본이 여러 개 있으면 한 사본이 끊어졌을 때 다른 사본의 겹치는 구간을 복구 주형으로 이용할 수 있다.

2006년 《Nature》에 발표된 연구에서는 심하게 조사된 D. radiodurans가 염색체를 두 단계로 재조립하는 과정이 제시됐다. 첫 단계는 확장된 합성 의존 가닥 어닐링, 즉 ESDSA다. DNA 조각의 한쪽 끝이 다른 유전체 사본에서 상보적인 서열을 찾고, 그 서열을 주형으로 긴 DNA 가닥을 새로 합성한다.

새로 합성된 단일가닥 DNA들은 서로 겹치는 구간에서 결합해 처음보다 긴 조각을 만든다. 이 과정만으로 완전한 원형 염색체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두 번째 단계에서는 RecA 단백질이 관여하는 상동재조합이 작동해 남은 조각을 정확한 관계로 연결한다. 연구진은 여러 유전체 사본과 무작위로 겹치는 DNA 절단 조각이 이 복구 방식에 필요한 조건이라고 설명했다.

RecA 외에도 RecFOR 경로와 DdrA, DdrB, PprA 같은 손상 반응 단백질이 DNA 끝을 보호하고 단일가닥을 결합하거나 복구 과정을 조절한다. D. radiodurans에는 모든 손상을 해결하는 하나의 특별한 유전자가 있는 것이 아니다. 항산화 방어로 단백질을 보존한 뒤 여러 DNA 수선 경로가 역할을 나누어 염색체를 복원한다.

세포 안에서 유전체가 조밀하게 배열되는 현상도 복구에 도움을 줄 가능성이 연구됐다. 과거에는 고리 모양으로 정돈된 핵양체가 끊어진 DNA 조각의 확산을 막는 핵심 장치라는 설명이 제시되기도 했다. 하지만 모든 강한 방사선 내성 세균에서 같은 형태가 관찰되는 것은 아니다. 현재는 핵양체 배열 하나보다 유전체 사본 수, 단백질 보호와 여러 복구 경로의 결합을 함께 보는 해석이 더 적절하다.

유전자변형 세균이 방사성 혼합 폐기물 연구에 쓰인 까닭

핵무기 생산시설이나 방사성 폐기물 관련 부지에는 방사성 핵종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수은 같은 중금속과 톨루엔·클로로벤젠 같은 유기용매가 함께 섞인 혼합 폐기물이 발견될 수 있다. 유기물을 분해하는 일반적인 미생물이 있더라도 높은 방사선 아래에서 효소와 세포 기능을 오래 유지하지 못하면 정화에 이용하기 어렵다.

D. radiodurans는 방사선에는 강하지만 원래부터 모든 유기용매와 중금속을 제거하는 세균은 아니다. 연구진은 다른 세균에서 유래한 분해 유전자를 넣어 방사선 내성과 오염물질 처리 능력을 한 세포에 결합하는 실험을 진행했다.

1998년 연구에서는 톨루엔 다이옥시제네이스를 만드는 tod 유전자들을 D. radiodurans의 염색체에 도입했다. 톨루엔 다이옥시제네이스는 산소를 이용해 방향족 화합물에 산소 원자를 넣는 다성분 효소다. 유전자변형 균주는 톨루엔과 클로로벤젠, 3,4-디클로로-1-부텐과 인돌을 산화할 수 있었고, 시간당 60그레이의 감마선에 지속해서 노출된 조건에서도 효소를 합성하고 클로로벤젠을 분해했다.

2000년에는 대장균에서 가져온 merA 유전자를 발현하는 균주가 제작됐다. merA가 만드는 수은 환원효소는 이온 상태의 2가 수은을 원소 상태의 수은으로 환원한다. 연구에서 해당 균주는 방사선과 이온성 수은이 함께 존재하는 조건에서 성장하고 수은을 휘발성 원소 수은으로 전환했다. 수은 처리 기능과 톨루엔 대사 기능을 함께 갖춘 균주도 시험됐다.

이 결과를 유전자변형 D. radiodurans가 오염 현장에서 이미 널리 사용된다는 의미로 받아들이면 안 된다. 수은을 휘발성 형태로 바꾸는 것은 원소 자체를 없애는 반응이 아니며, 대기로 이동한 수은을 포집하고 처리하는 추가 공정이 필요하다. 유전자변형 미생물의 외부 유출 가능성, 저온과 영양 부족에서의 활동성, 여러 오염물질이 동시에 존재할 때의 효율도 검증해야 한다.

이 세균을 살펴볼수록 방사선 내성은 단단한 외피 하나나 특별한 유전자 하나로 얻어지는 성질이 아니라는 점이 인상적이다. 방사선이 물을 분해해 활성산소를 만들고, 망간을 포함한 방어 체계가 복구 단백질의 산화를 줄이며, 여러 유전체 사본과 재조합 경로가 끊어진 DNA를 다시 연결한다. 화학반응에서 시작된 손상을 세포 전체의 협력으로 수습하는 과정이야말로 D. radiodurans 연구에서 가장 눈여겨볼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