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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와이 근해의 얕은 모래 바닥에는 몸통 길이가 몇 센티미터인 하와이 짧은 꼬리오징어 Euprymna scolopes가 산다. 낮에는 모래 속에 몸을 숨기고 쉬다가 밤이 되면 작은 새우를 사냥하기 위해 움직인다. 이 오징어의 배 쪽에는 빛을 내보내는 발광기관이 있지만 실제 발광 반응을 일으키는 주체는 오징어의 세포가 아니다.
발광기관 안에는 Aliivibrio fischeri라는 해양 세균이 높은 밀도로 산다. 과거 논문에서는 Vibrio fischeri라는 이름으로 기록됐다. 2007년 유전적·생화학적 비교 연구를 거쳐 Vibrio속에서 새로 제안된 Aliivibrio속으로 옮겨졌으며, 현재 인정되는 학명은 Aliivibrio fischeri다. 다만 오랫동안 축적된 공생과 발광 연구에서는 지금도 Vibrio fischeri라는 이름을 자주 사용하므로 두 이름이 같은 세균을 가리킬 수 있다는 점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
오징어는 세균에게 영양분과 머물 공간을 제공하고, 세균은 청록색 빛을 만든다. 이 관계는 부모 오징어에게서 세균이 직접 전달되면서 시작되지 않는다. 갓 부화한 오징어의 발광기관에는 공생 세균이 없으며, 어린 오징어는 바닷물 속에 다른 미생물과 섞여 있는 A. fischeri를 매 세대 새로 받아들여야 한다.
수많은 바닷물 세균 중 알맞은 공생자를 받아들이는 과정
어린 오징어의 발광기관 바깥에는 섬모가 빽빽하게 난 돌기 조직이 있다. 섬모 운동으로 만들어진 물의 흐름은 주변 바닷물과 미생물을 기관 표면으로 모은다. 오징어가 분비한 점액 속에서는 여러 세균이 일시적으로 집합하지만, 이 가운데 실제 발광기관 안쪽에 지속해서 자리 잡을 수 있는 세균은 대부분 A. fischeri다.
처음 모인 세균은 발광기관 표면의 작은 구멍인 공을 통해 들어간다. 이후 관과 전실, 병목처럼 좁아지는 구간을 지나 발광기관 깊은 곳의 주머니 모양 구조인 크립트에 도착한다. 지속적인 세균 집단은 주로 이 깊은 크립트에 형성된다. 세균이 이 경로를 통과하려면 편모 운동과 화학주성이 필요하다. 화학주성은 주변 화학물질의 농도 차이를 감지해 이동 방향을 조절하는 반응이다.
발광기관은 세균에게 편안한 통로만 제공하지 않는다. 초기 정착 장소에는 산화질소와 같은 반응성 질소 물질과 여러 항균 환경이 형성된다. 이런 조건은 모든 세균을 무차별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적합한 공생자를 선별하는 압력으로 작용한다. A. fischeri는 산화 스트레스에 대응하고 점액 속에서 집합하며 좁은 통로를 지나갈 능력을 갖췄지만 다른 많은 해양 세균은 깊은 크립트까지 정착하지 못한다.
소수의 A. fischeri가 크립트에 도달하면 빠르게 증식한다. 세균의 정착은 숙주의 발광기관에도 발생 신호를 보낸다. 2004년 연구에서는 세균의 펩티도글리칸에서 유래한 트라케아 세포독소와 지질다당류가 함께 작용할 때 발광기관 바깥의 섬모 조직이 퇴화하는 과정이 촉진된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트라케아 세포독소는 이름과 달리 이 공생계에서 별도의 독성 물질이 새로 만들어진다는 뜻은 아니다. 세균이 세포벽을 만들고 분해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특정 펩티도글리칸 조각을 가리킨다. 병원성 세균에서는 숙주 조직에 손상을 일으킬 수 있는 분자들이지만, 오징어와 A. fischeri의 관계에서는 발광기관의 정상적인 성숙을 유도하는 신호로 사용된다. 같은 세균 성분이라도 숙주와 미생물의 관계에 따라 생물학적 결과가 달라지는 사례다.
세균의 수가 충분히 늘어나야 발광 반응이 강해진다
A. fischeri 한두 마리가 만드는 빛은 매우 약하다. 세균은 자신이 만든 작은 신호분자의 주변 농도를 감지하고, 세포 밀도가 높아졌을 때 발광 관련 유전자의 발현을 증가시킨다. 이처럼 세균 집단이 신호물질의 농도를 통해 주변 세포 밀도를 파악하고 유전자 발현을 조절하는 현상을 정족수 감지라고 한다.
대표적인 LuxI·LuxR 회로에서 LuxI 효소는 3-옥소헥사노일 호모세린 락톤이라는 아실 호모세린 락톤 신호를 만든다. 세균 수가 적고 바닷물이 열려 있을 때는 신호가 주변으로 확산해 농도가 낮게 유지된다. 반면 발광기관의 제한된 공간에서 세균이 증식하면 신호가 축적된다. 일정 농도 이상이 되면 신호분자가 LuxR 단백질과 결합하고, 이 복합체가 발광 유전자군의 전사를 촉진한다.
발광 반응의 핵심 효소는 LuxA와 LuxB 단백질로 이루어진 세균성 루시페레이스다. 이 효소는 환원형 플라빈인 FMNH2, 산소와 긴 사슬 알데하이드를 반응시킨다. 이 과정에서 산화형 플라빈 FMN과 지방산, 물이 만들어지면서 약 490나노미터 부근의 청록색 빛이 방출된다.
발광은 다음과 같이 나타낼 수 있다.
FMNH2 + O2 + RCHO → FMN + H2O + RCOOH + 빛
LuxC·LuxD·LuxE 단백질은 반응에 사용된 긴 사슬 알데하이드를 다시 마련하는 데 관여하고, LuxG는 환원형 플라빈 공급과 연결된다. 따라서 세균의 발광은 물질이 한 번 산화되면서 끝나는 반응이 아니라 알데하이드와 환원형 플라빈을 계속 공급해야 유지되는 대사 과정이다. 빛을 만드는 데 세포의 환원력과 산소가 소비되므로 세균 밀도가 낮을 때부터 강한 발광을 유지하는 것은 에너지 면에서 불리하다.
발광기관 안에서는 LuxI·LuxR 회로만 독립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AinS가 만드는 또 다른 아실 호모세린 락톤 신호는 비교적 낮은 세포 밀도에서 먼저 작용해 Lux 회로가 활성화될 조건을 마련한다. LuxS가 생성에 관여하는 AI-2 신호도 상위 조절 경로를 통해 발광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실제 조절은 세균 수가 특정 값에 도달하면 스위치 하나가 켜지는 방식이라기보다 여러 신호가 세포 밀도와 대사 상태를 단계적으로 반영하는 구조에 가깝다.
아래로 비치는 빛으로 밤바다의 그림자를 줄인다
달빛과 별빛이 수면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밤바다에서 동물이 헤엄치면 몸 아래에 어두운 실루엣이 만들어진다. 아래쪽에 있는 포식자는 이 명암 차이를 이용해 먹잇감을 찾을 수 있다. 하와이 짧은꼬리오징어는 배 쪽 발광기관에서 세균이 만든 빛을 아래로 내보내 몸의 그림자를 줄이는 역조명 위장을 사용한다.
발광기관에는 세균의 빛을 아래쪽으로 반사하는 조직과 빛을 퍼뜨리는 렌즈, 통과하는 빛의 양을 조절하는 구조가 있다. 반사 조직에는 리플렉틴이라는 단백질이 들어 있으며, 위쪽으로 향하는 세균의 빛을 배 쪽으로 되돌리는 데 관여한다. 먹물주머니도 발광기관 주변에서 가림막과 비슷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역조명은 단순히 발광기관을 최대 밝기로 켜는 방식이 아니다. 오징어 몸에서 나오는 빛이 주변에서 내려오는 빛보다 강하거나 약하면 오히려 실루엣이 드러날 수 있다. 2004년 실험에서는 위에서 내려오는 빛의 세기가 달라질 때 오징어 발광기관에서 측정되는 세균성 빛의 세기도 함께 변했다. 이는 오징어가 주변광에 맞춰 발광기관의 밝기를 조절한다는 실험적 근거다.
발광하지 못하는 세균을 가진 어린 오징어와 정상적으로 빛을 내는 세균을 가진 오징어를 어두운 조건에서 비교한 포식 실험에서도 발광 개체가 덜 잡아먹히는 결과가 보고됐다. 세균이 만든 빛이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시각적 탐지 위험을 줄이는 데 실제로 기여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발광만으로 모든 포식자를 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역조명의 효과는 수면에서 내려오는 빛의 세기와 관찰 방향, 수심, 물의 탁도와 포식자의 시각 능력에 따라 달라진다. 오징어가 모래 속에 숨는 행동과 몸의 색을 바꾸는 능력도 함께 작용한다. 세균 발광은 여러 방어 행동 가운데 밤에 움직이는 오징어의 실루엣을 줄이는 한 가지 방법이다.
매일 아침 세균 약 90%를 내보내는 까닭
해가 뜰 무렵 오징어는 발광기관 크립트에 있던 세균 집단의 약 90%를 바닷물로 배출한다. 배출물에는 세균뿐 아니라 숙주 세포와 여러 기질 성분도 포함된다. 발광기관 안에 남은 세균은 낮 동안 다시 증식하고, 오징어가 밤에 활동을 시작할 무렵에는 높은 밀도와 발광 능력을 회복한다.
이 주기는 오징어의 행동과 연결돼 있다. 밤에는 바닥 위로 나와 사냥하기 때문에 역조명에 사용할 빛이 필요하지만, 해가 뜨면 모래 속으로 들어가므로 같은 수준의 발광을 유지할 필요가 줄어든다. 세균 대부분을 배출한 뒤 남은 집단을 다시 키우는 과정은 발광기관의 세포 밀도와 대사를 숙주의 활동 시간에 맞추는 데 도움이 된다.
바깥으로 나온 세균은 죽은 폐기물만은 아니다. 일부는 주변 바닷물에서 살아남아 자유생활 집단에 합류할 수 있다. 새로 부화한 오징어는 부모로부터 세균을 직접 물려받지 않기 때문에 환경에 존재하는 A. fischeri를 다시 찾아야 한다. 성체가 매일 세균을 배출하는 행동은 다음 세대의 어린 오징어가 공생자를 만날 수 있는 환경적 공급원과 연결될 가능성이 있다.
이 공생관계에서는 숙주와 세균 어느 한쪽만 일방적으로 상대를 조절하지 않는다. 오징어는 세균이 들어올 공간과 영양분을 제공하고 매일 집단 크기를 바꾼다. 세균은 화학 신호로 자신의 밀도를 감지하고 빛을 만들며, 세포벽 성분과 발광 자체를 통해 숙주의 조직과 유전자 발현에도 영향을 준다.
화학을 가르치는 입장에서 이 공생이 흥미로운 이유는 빛이 추상적인 생명현상이 아니라는 데 있다. 환원형 플라빈에서 알데하이드와 산소로 전자가 이동하는 산화·환원 반응이 실제 광자로 나타나고, 그 빛이 오징어의 위장 행동으로 이어진다. 작은 분자 수준의 전자 이동과 세균의 집단 신호, 동물의 생존 전략이 한 과정 안에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 A. fischeri 공생계의 가장 뚜렷한 특징이라고 생각한다.
참고자료
- Urbanczyk, H. 외, “Reclassification of Vibrio fischeri, Vibrio logei, Vibrio salmonicida and Vibrio wodanis as Aliivibrio fischeri gen. nov., comb. nov., Aliivibrio logei comb. nov., Aliivibrio salmonicida comb. nov. and Aliivibrio wodanis comb. nov.”, International Journal of Systematic and Evolutionary Microbiology,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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