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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트병과 폴리에스터 의류에 널리 쓰이는 PET의 정식 명칭은 폴리에틸렌 테레프탈레이트다. 에틸렌글라이콜과 테레프탈산이 축합반응을 거쳐 반복적으로 연결된 고분자이며, 사슬 사이에는 에스터 결합이 존재한다. 가볍고 단단하면서 화학적으로 안정해 용기와 섬유를 만드는 데 유용하지만, 같은 특성 때문에 자연환경에서는 빠르게 분해되지 않는다.
2016년 일본 연구진은 PET를 분해하고 그 분해산물을 성장에 이용하는 세균 Ideonella sakaiensis 201-F6T를 《Science》에 보고했다. 연구진은 일본 오사카부 사카이시의 PET병 재활용 시설에서 토양, 퇴적물, 폐수와 활성슬러지 등 250개의 환경 시료를 수집해 PET 박막과 함께 배양했다.
시료 가운데 46번 미생물 군집이 PET 표면에 붙어 막을 만들며 PET를 분해했다. 이 군집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 세균을 분리한 결과 새로운 종으로 확인됐고, 발견 장소인 사카이시의 이름을 따서 I. sakaiensis라는 학명이 붙었다. 이 세균은 그람음성 막대균이며 극성 편모를 이용해 움직이는 호기성 세균이다.
I. sakaiensis가 특별한 이유는 PET 표면에 흠집을 내는 데 그치지 않고, PETase와 MHETase라는 두 효소를 이용해 PET를 작은 분자로 나눈 뒤 그 탄소를 세포 성장에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이 발견이 버려진 페트병을 세균이 자연에서 빠르게 없애준다는 뜻은 아니다. 어떤 PET를 어떤 온도에서 얼마나 오래 분해했는지 실험 조건을 함께 봐야 한다.
PETase와 MHETase는 역할을 나눠 PET를 해체한다
I. sakaiensis는 PET 표면에 부착한 뒤 PETase라고 부르는 효소를 세포 밖으로 내보낸다. PETase는 물 분자를 이용해 PET 사슬의 에스터 결합을 끊는 가수분해효소다. PET는 물에 녹지 않는 고체이므로 효소가 반응하려면 먼저 플라스틱 표면에 접근해 고분자 사슬과 접촉해야 한다.
에스터의 가수분해는 에스터 결합에 물이 첨가되면서 카복실산과 알코올 성분으로 나뉘는 반응이다. PETase는 긴 PET 사슬의 에스터 결합을 여러 차례 끊어 MHET, BHET, 테레프탈산과 에틸렌글라이콜 등을 만든다. 이 가운데 주요 가용성 생성물은 MHET다.
MHET는 모노(2-하이드록시에틸) 테레프탈레이트의 약자로, 테레프탈산과 에틸렌글라이콜이 에스터 결합 하나를 남긴 채 연결된 물질이다. BHET는 에틸렌글라이콜 성분이 두 개 연결된 중간생성물이다. PETase는 BHET도 MHET와 에틸렌글라이콜로 가수분해할 수 있다.
두 번째 효소인 MHETase는 MHET에 남아 있는 에스터 결합을 끊어 테레프탈산과 에틸렌글라이콜을 만든다. 초기 연구에서는 MHETase가 세포막에 연결된 형태로 작용하는 모델이 제시됐으며, 이후 연구에서는 주변세포질에 자리할 가능성도 논의됐다. 정확한 세포 내 위치에 관한 설명과 별개로 MHETase가 MHET를 두 단량체로 나누는 역할을 한다는 점은 실험으로 확인됐다.
생성된 테레프탈산과 에틸렌글라이콜은 세포 안으로 들어가 추가 대사 과정을 거친다. 다만 두 물질이 똑같은 효율로 이용되는 것은 아니다. 후속 유전자 파괴 연구에서는 테레프탈산 대사가 PET를 이용한 성장에 중요한 반면, 에틸렌글라이콜만 제공했을 때에는 성장이 제한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두 단량체가 만들어진다는 사실과 세균이 두 물질을 같은 정도로 완전히 이용한다는 주장은 구분해야 한다.
2020년 연구에서는 PETase와 MHETase를 함께 사용했을 때 무정형 PET 박막에서 단량체 생성량이 증가했다. PETase가 PET를 잘라 MHET를 만들고 MHETase가 이를 계속 제거하면 PETase 반응을 방해할 수 있는 중간생성물의 축적이 줄어든다. 두 효소를 연결한 융합 단백질도 분리된 효소보다 높은 PET 및 MHET 전환량을 보였다.
세린 한 개에서 시작되는 에스터 결합 가수분해
PETase는 세린 가수분해효소에 속하며 활성 부위에는 세린, 히스티딘과 아스파트산으로 이루어진 촉매 삼합체가 있다. 세 아미노산은 서로 떨어져 독립적으로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전자와 양성자의 이동을 돕는 하나의 반응 체계로 작동한다.
히스티딘은 세린의 하이드록시기에서 양성자가 이동하도록 도와 세린의 산소를 반응성이 큰 친핵체로 만든다. 활성화된 산소는 PET 에스터 결합의 카보닐 탄소를 공격한다. 이 과정에서 사면체 중간체가 형성되고 에스터 결합이 끊어지면서 PET 사슬 일부가 효소에 일시적으로 결합한다.
그다음 물 분자가 활성 부위에 들어와 비슷한 방식으로 활성화되고 효소와 기질 사이의 결합을 가수분해한다. 효소는 원래 상태로 돌아오고 짧아진 PET 사슬이나 MHET 등의 생성물이 떨어져 나온다. PETase가 플라스틱을 물리적으로 갉아 먹는 것이 아니라 활성 부위에서 친핵성 치환과 가수분해 반응을 반복하는 것이다.
PETase의 전체적인 단백질 접힘은 식물 표면의 큐틴을 분해하는 큐티네이스와 비슷하다. 큐틴도 에스터 결합을 포함한 폴리에스터이므로 PETase가 완전히 새로운 반응 원리를 발명한 효소라고 보기는 어렵다. 다만 PETase는 일부 큐티네이스보다 기질 결합 홈이 넓고, PET의 테레프탈산 고리와 상호작용할 수 있는 방향족 아미노산이 적절한 위치에 배열돼 있다.
2018년에 발표된 구조 연구들은 PETase의 촉매 삼합체와 넓은 기질 결합 부위를 확인했다. 특정 아미노산을 바꾸면 기질 결합 형태와 열적 안정성, PET 분해 활성이 달라졌다. 이 결과는 단백질의 입체구조를 바탕으로 자연 효소보다 안정하거나 활성이 높은 변이체를 설계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그렇다고 PETase가 PET가 발명된 뒤 불과 수십 년 만에 무에서 새로 생겨난 효소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자연계에는 식물성 폴리에스터와 여러 방향족 에스터에 작용하는 효소가 이미 존재한다. 기존 에스터 가수분해효소 계통 가운데 일부가 돌연변이와 선택을 거쳐 PET에 대한 활성을 높였을 가능성이 있지만, PETase의 정확한 진화 과정은 계속 연구되고 있다.
6주 만에 분해된 PET와 음료수병은 조건이 다르다
2016년 연구에서 I. sakaiensis가 약 6주에 걸쳐 거의 분해한 재료는 결정화도가 약 1.9%인 얇은 PET 박막이었다. 배양 온도는 30℃였다. 실험실에서 반응하기 쉽도록 준비한 저결정성 박막의 결과이므로 두껍고 결정성이 높은 음료수병이 같은 온도와 기간에 사라진다고 해석하면 안 된다.
고분자에서 결정성은 사슬들이 얼마나 규칙적이고 촘촘하게 배열돼 있는지를 나타낸다. PET 사슬이 불규칙하게 얽힌 비결정 영역에서는 물과 효소가 사슬 사이로 접근하기 쉽다. 반대로 결정 영역에서는 사슬 사이의 인력이 강하고 자유부피가 작아 효소가 에스터 결합 가까이 접근하기 어렵다.
실제 페트병과 폴리에스터 섬유는 제조 과정에서 늘어나고 열처리되면서 결정성이 높아질 수 있다. 병의 입구와 몸통처럼 같은 제품 안에서도 결정성과 두께가 다를 수 있다. 색소, 접착제, 다층 필름과 다른 플라스틱이 섞인 복합 포장재에서는 효소가 PET 표면에 접근하기가 더 어려워진다.
PET의 유리전이온도에 가까워지면 비결정 영역의 고분자 사슬 운동이 증가한다. 유리전이는 단단하고 움직임이 적은 유리상 고분자가 보다 유연한 상태로 변하는 현상이다. 사슬 운동이 활발해지면 효소가 에스터 결합에 접근하기 쉬워져 분해속도를 높일 수 있다.
문제는 자연형 I. sakaiensis PETase가 이러한 높은 온도에서 충분히 안정하지 않다는 점이다. 온도를 높여 PET 사슬을 움직이게 만들면 단백질 효소가 먼저 변성될 수 있다. 그래서 단백질 공학에서는 PETase의 아미노산을 바꾸거나 이황화결합을 추가해 열적 안정성을 높이는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산업용 PET 분해 연구에서 사용되는 효소가 모두 I. sakaiensis의 PETase인 것도 아니다. 퇴비에서 발견된 LCC와 여러 미생물의 큐티네이스를 개량한 효소도 고온에서 PET를 분해하는 후보로 연구된다. 다른 효소를 이용한 산업적 성과를 모두 플라스틱 분해 세균 한 종의 능력으로 소개하면 서로 다른 연구를 혼동하게 된다.
플라스틱을 분해하는 것과 순환 재활용은 다르다
플라스틱 표면에 흠집이 생기거나 고분자 사슬이 짧아졌다고 해서 재활용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PET를 다시 같은 품질의 원료로 사용하려면 테레프탈산과 에틸렌글라이콜 수준까지 충분히 분해하고, 생성물을 다른 물질과 분리해 높은 순도로 정제해야 한다.
기계적 재활용은 폐PET를 세척하고 녹인 뒤 다시 성형하는 방법이다. 여러 번 가열하면 고분자 사슬이 짧아지고 색소나 다른 플라스틱이 섞여 재료의 품질이 낮아질 수 있다. 효소 분해는 PET를 구성하던 단량체로 되돌릴 수 있어 품질이 떨어진 PET를 새로운 원료로 전환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효소를 사용한다고 모든 과정이 자동으로 친환경적이 되는 것은 아니다. 폐기물의 선별과 세척, PET의 분쇄와 전처리, 효소 생산, 반응 온도 유지, 생성물 분리와 정제에 에너지와 비용이 들어간다. 기존 재활용이나 석유에서 새 PET를 생산하는 방법과 비교하려면 전체 공정의 에너지 사용량과 탄소 배출량을 함께 평가해야 한다.
세균 자체를 자연이나 폐기물 더미에 뿌리는 방법도 현실적인 해결책이라고 보기 어렵다. 온도와 산성도, 영양 조건을 조절하기 어렵고 다른 미생물과 경쟁해야 하며, PET 외의 재료가 섞여 있으면 분해효율이 낮아질 수 있다. 산업적 활용은 대체로 통제된 반응기에서 생산한 효소를 사용하거나 개량된 미생물과 효소 체계를 운전하는 방향으로 연구된다.
I. sakaiensis의 발견은 자연환경에 PET를 버려도 된다는 근거가 아니다. PETase가 고분자 표면의 에스터 결합을 끊고 MHETase가 중간생성물을 단량체로 전환하는 생물학적 경로를 확인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연구자들은 이 경로를 바탕으로 더 빠르고 안정적인 효소와 효소 조합을 설계할 수 있게 됐다.
화학을 가르치는 입장에서 이 세균이 인상적인 이유는 플라스틱이 영원히 변하지 않는 물질이 아니라 특정 결합으로 이루어진 분자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PET의 에스터 결합도 알맞은 촉매와 물, 반응 조건이 갖춰지면 끊을 수 있다. 다만 시험관의 얇은 저결정성 박막을 분해하는 것과 전 세계의 페트병을 처리하는 것은 전혀 다른 규모의 문제다. 이 발견을 완성된 해결책으로 과장하기보다, 고분자를 단량체로 되돌리는 반응 경로를 확보한 출발점으로 보는 것이 가장 정확하다고 생각한다.
참고자료
- Yoshida, S. 외, “A Bacterium That Degrades and Assimilates Poly(ethylene terephthalate)”, Science, 2016.
- Tanasupawat, S. 외, “Ideonella sakaiensis sp. nov., Isolated from a Microbial Consortium That Degrades Poly(ethylene terephthalate)”, International Journal of Systematic and Evolutionary Microbiology, 2016.
- Joo, S. 외, “Structural Insight into Molecular Mechanism of Poly(ethylene terephthalate) Degradation”, Nature Communications, 2018.
- Austin, H. P. 외, “Characterization and Engineering of a Plastic-Degrading Aromatic Polyesterase”,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2018.
- Knott, B. C. 외, “Characterization and Engineering of a Two-Enzyme System for Plastics Depolymerization”,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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