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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렐라 표면에 붙어 공격하는 뱀피로비브리오 클로렐라보루스

 

담수에 사는 녹색 미세조류 Chlorella를 대량으로 배양하다 보면 짙은 녹색이던 배양액의 색이 갑자기 옅어지고 조류 세포가 무너지는 일이 생길 수 있다. 이러한 배양 실패를 일으키는 포식 세균 가운데 하나가 Vampirovibrio chlorellavorus다. 속명 Vampirovibrio에는 먹잇감 표면에 달라붙어 내용물을 이용하는 생활 방식과 굽은 막대 모양이라는 특징이 반영돼 있다.

이 세균은 1966년 우크라이나의 담수에서 얻은 Chlorella vulgaris 배양액에서 발견됐다. 포식 과정을 전자현미경으로 조사한 연구는 1972년에 발표됐으며, 당시에는 Bdellovibrio chlorellavorus라는 이름으로 보고됐다. 다른 세균을 공격하는 브델로비브리오와 생활 방식이 비슷해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Bdellovibrio bacteriovorus가 그람음성 세균의 바깥막과 세포막 사이인 주변세포질로 침입하는 것과 달리, V. chlorellavorus는 클로렐라 세포 안으로 몸 전체가 들어가지 않는다. 조류의 세포벽 바깥에 붙은 채 접촉 지점을 통해 내부 물질을 이용하는 외부기생성 포식자다. 이러한 차이를 반영해 1980년 Vampirovibrio라는 별도의 속으로 옮겨졌다.

V. chlorellavorus는 표준 균주가 지정돼 있고 학명이 국제원핵생물명명규약에 따라 유효하게 발표된 종이다. 따라서 Candidatus Vampirovibrio chlorellavorus가 아니라 Vampirovibrio chlorellavorus로 표기한다. 과거의 보존 공동배양체를 다시 살리지 못한 적이 있다는 사실과 학명의 유효성은 별개의 문제다.

클로렐라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표면에서 공격한다

먹잇감을 찾는 단계의 V. chlorellavorus는 짧고 굽은 막대 모양이며 편모를 이용해 움직이는 것으로 관찰됐다. 유전체에서도 편모 형성과 화학주성에 필요한 유전자들이 발견됐다. 화학주성은 주변 물질의 농도 차이를 감지해 이동 방향을 바꾸는 반응이다. 다만 클로렐라가 내보내는 어떤 물질을 실제 유인 신호로 감지하는지는 완전히 밝혀지지 않았다.

적합한 클로렐라 세포를 만나면 세균은 조류의 세포벽 표면에 단단히 부착한다. 하나의 조류 세포에 여러 세균이 동시에 붙을 수도 있다. 전자현미경 관찰에서는 세균과 조류가 맞닿은 곳에 전자밀도가 높은 접촉 구조가 나타났고, 클로렐라 내부에는 접촉 지점 가까이부터 액포와 구조 변화가 생겼다.

V. chlorellavorus의 유전체에는 접합성 제4형 분비계와 관련된 유전자들이 존재한다. 제4형 분비계는 단백질이나 DNA 같은 물질을 다른 세포에 전달할 수 있는 장치다. 연구진은 이 장치를 통해 분해효소나 다른 작용 물질이 클로렐라 안으로 전달될 가능성을 제시했다. 다만 특정 효소가 실제로 주입돼 어떤 분자를 먼저 분해하는지까지 모두 실험으로 확인된 것은 아니므로 유전체 예측과 직접 관찰을 구분해야 한다.

공격받은 클로렐라는 엽록소와 세포질 내용물을 잃으면서 녹색이 옅어진다. 세포 내부의 구조가 점차 사라지고 마지막에는 세포벽과 일부 막 구조가 남은 ‘고스트 세포’에 가까운 잔해가 된다. 세균은 클로렐라에서 빠져나온 유기물을 흡수해 성장한다.

이 세균의 증식 과정을 브델로비브리오처럼 하나의 긴 필라멘트가 여러 자손으로 동시에 갈라지는 방식으로 설명하면 안 된다. 현재 형태 관찰과 유전체를 바탕으로 제안된 생활사에서는 먹잇감 표면에 붙은 세균이 영양분을 얻으며 이분법으로 증식한다. 증식한 자손은 내용물이 소진된 조류 세포에서 떨어져 나와 새로운 먹잇감을 찾는다.

광합성 생물의 가까운 친척인데 광합성을 하지 않는다

이 세균의 분류는 형태만으로 정확히 알기 어려웠다. 처음에는 포식 방식이 비슷한 Bdellovibrio의 친척으로 여겨졌지만, 16S 라이보솜 RNA와 유전체를 분석한 결과 전혀 다른 계통에 속한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현재 V. chlorellavorus는 시아노박테리아와 가까운 비광합성 계통에 놓인다. 2015년 유전체 연구에서는 이 세균이 당시 멜라이노박테리아라고 불리던 계통에 포함되는 것으로 분석됐다. 최근 분류에서는 뱀피로비브리오강과 뱀피로비브리오목이라는 이름이 사용된다.

시아노박테리아는 일반적으로 빛에너지를 이용해 물을 산화하고 산소를 발생시키는 광합성 세균으로 알려져 있다. 광합성 과정에서는 광계Ⅱ와 광계Ⅰ이 차례로 전자를 전달하고, 빛에너지로 양성자의 농도 기울기를 만든 뒤 ATP와 NADPH를 생산한다. 엽록소는 빛을 흡수하는 중심 색소로 작용한다.

그러나 V. chlorellavorus의 유전체에서는 광계Ⅰ과 광계Ⅱ, 엽록소 합성 및 집광 안테나 단백질에 필요한 것으로 알려진 광합성 유전자들이 발견되지 않았다. 클로렐라에 붙어 산다고 해서 클로렐라의 엽록소를 이용하거나 스스로 광합성하는 것도 아니다. 빛을 에너지원으로 사용하는 대신 살아 있는 조류에서 유기물을 얻어야 한다.

광합성을 하지 않는 현재의 생활 방식과 계통적 위치를 함께 이해하려면 ‘시아노박테리아의 친척이면 반드시 광합성을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분류는 현재 눈에 보이는 기능 하나가 아니라 여러 유전자의 진화적 관계를 바탕으로 정해진다. 다만 이 계통이 광합성 능력을 가진 조상에서 유전자를 잃었는지, 산소발생 광합성이 완성되기 전에 갈라졌는지는 계통수의 해석과 추가 유전체 자료에 따라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유전체에는 편모와 화학주성, 분비계, 단백질분해효소와 탄수화물에 작용할 가능성이 있는 효소 유전자들이 들어 있다. 그러나 유전자 서열만으로 어떤 단백질이 실제 포식 과정에서 작동하는지를 확정할 수는 없다. 특히 이 세균은 살아 있는 클로렐라와 함께 키워야 하므로 포식자만 따로 분리해 유전자를 조작하고 기능을 검증하기가 어렵다.

클로렐라 배양조에서는 며칠 만에 생산량을 무너뜨릴 수 있다

클로렐라는 건강식품, 사료, 색소와 바이오연료 원료 등을 생산하기 위해 대량 배양된다. 야외 개방형 배양조는 빛과 이산화탄소를 이용하기 쉽고 대규모로 운영할 수 있지만 외부의 세균, 원생생물과 바이러스가 유입될 위험도 크다.

먹잇감이 낮은 밀도로 흩어진 자연환경과 달리 배양조에는 유전적으로 비슷한 클로렐라가 높은 밀도로 모여 있다. 포식자가 이용할 수 있는 숙주가 연속적으로 공급되기 때문에 감수성 있는 균주에 V. chlorellavorus가 유입되면 짧은 시간 안에 감염이 퍼질 수 있다.

2016년 연구에서는 각각 13만 리터 규모인 네 개의 시험 상업용 개방형 배양조가 붕괴하는 과정에서 V. chlorellavorus가 확인됐다. 현미경으로는 세균이 조류 표면에 붙고 클로렐라 세포들이 뭉치며, 배양액의 녹색이 옅어진 뒤 빈 세포벽이 늘어나는 순서가 관찰됐다. 16S 라이보솜 RNA 유전자 분석에서도 배양 실패가 진행될수록 이 세균에 해당하는 서열의 비율이 증가했다.

모든 조류가 같은 정도로 공격받는 것은 아니다. 1986년 숙주 범위를 조사한 연구에서는 시험한 C. vulgaris, C. sorokinianaC. kessleri 균주들은 공격받았지만, 다른 여러 Chlorella 종에서는 대부분의 균주가 감염되지 않았다. 이러한 선택성은 조류 세포벽의 화학 조성과 세포 표면의 결합 구조 차이와 관련될 가능성이 있다.

배양조 관리는 색이 옅어지는 것을 기다렸다가 시작하면 늦을 수 있다. 연구진은 V. chlorellavorus의 DNA를 선택적으로 증폭하는 정량 PCR 검사를 이용해 세균의 증가를 미리 감지했다. 현미경으로 포식자의 부착과 고스트 세포를 확인하고 정량 PCR 결과를 함께 사용하면 단순한 영양 부족이나 다른 오염 원인과 구분하는 데 도움이 된다.

같은 연구에서는 배양액을 아세트산 0.5g/L가 존재하는 조건에서 염산으로 pH 3.5까지 낮추고 15분 동안 처리한 뒤 원래 조건으로 되돌리는 방법을 시험했다. 사용한 클로렐라의 성장은 크게 저해하지 않으면서 호기성 세균 수는 약 100분의 1 수준으로 감소했고, V. chlorellavorus 증가가 감지됐을 때 처리하면 배양조 붕괴를 막고 생산 가능한 기간을 늘릴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수치를 모든 클로렐라 제품과 배양시설에 그대로 적용해서는 안 된다. 조류 종과 균주마다 산에 견디는 정도가 다르고 배양액의 완충능력, 온도와 세포 밀도도 영향을 준다. 식품이나 사료를 생산하는 시설이라면 사용 물질과 잔류 성분, 공정 기준도 별도로 검토해야 한다.

되살릴 수 없던 공동배양체에서 유전체를 복원했다

V. chlorellavorus는 살아 있는 감수성 클로렐라가 없으면 일반 액체배지나 한천배지에서 독립적으로 증식하기 어렵다. 세균과 조류가 섞인 공동배양체를 유지해야 하므로 포식자만의 생리와 유전자를 조사하기가 쉽지 않다.

1978년 동결건조해 보관한 공동배양 시료는 수십 년 뒤 다시 배양하려 했을 때 살아나지 않았다. 연구진은 이 시료에서 세균과 클로렐라의 DNA를 함께 추출한 뒤 염기서열의 조성, 유전자 구성과 다른 미생물과의 유사성을 비교해 V. chlorellavorus의 유전체를 분리·조립했다.

이 분석을 통해 형태 관찰만으로 브델로비브리오와 묶였던 세균이 시아노박테리아 근연 계통에 속한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동시에 광합성 유전자가 없고 편모와 화학주성, 제4형 분비계에 해당하는 유전자들을 가졌다는 점도 밝혀졌다. 이후 미국 애리조나의 야외 조류 배양시설에서 확보한 계통들의 유전체가 추가로 분석되면서 상업 배양조에서 활동하는 세균과 오래된 표본을 비교할 수 있게 됐다.

다만 유전체에 분비계나 가수분해효소 후보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그 단백질이 실제 클로렐라 세포벽을 뚫는 장면이 입증되는 것은 아니다. 현재 설명되는 생활사에는 전자현미경으로 직접 본 현상, 배양 과정에서 확인한 변화와 유전체에서 예측한 기능이 함께 포함돼 있다. 앞으로 포식 관련 단백질의 발현과 전달을 직접 측정해야 세포벽 공격 과정이 더 분명해질 수 있다.

자연에서 V. chlorellavorus가 클로렐라 개체수를 조절하고 유기물을 미생물 먹이망으로 되돌리는 역할을 할 가능성은 있다. 그러나 자연 생태계에서의 영향 범위와 비율을 직접 측정한 자료는 상업 배양조 연구보다 제한적이다. 산업 시설에서 큰 손실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곧바로 자연 생태계의 균형을 유지한다는 결론으로 확대할 필요는 없다.

내가 이 세균에서 가장 흥미롭게 느끼는 부분은 ‘뱀파이어’라는 이름보다 분류와 생활 방식의 어긋남이다. 광합성 생물과 가까운 계통이면서 광합성 장치를 갖지 않고, 오히려 녹색 미세조류의 표면에 붙어 그 유기물에 의존한다. 브델로비브리오와 비슷해 보여 같은 무리로 분류됐지만 유전체를 확인하자 전혀 다른 계통이었던 과정도 생물 분류가 외형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