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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니바실러스의 집단행동

 

한천배지 위에 세균을 한 방울 떨어뜨리면 대개 둥근 집락이 바깥쪽으로 퍼져 나간다. 그런데 “Paenibacillus vortex” V453은 작은 회전 집단을 만들고, 이 집단들이 이동하면서 가지처럼 연결된 흔적을 남긴다. 며칠이 지나면 배지 위에는 수많은 소용돌이와 방사형 통로가 얽힌 복잡한 무늬가 펼쳐진다. 누군가 방향을 정하고 무늬를 설계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수많은 세균이 주변 세포 및 환경과 상호작용하면서 만들어 내는 자기 조직화 현상이다.

 

이 균주는 1990년대 초 세균 집락의 패턴 형성을 연구하던 에셸 벤제이콥 연구진을 통해 알려졌다. 세포는 길쭉한 막대 모양이고 표면 전체에 여러 편모가 돋아 있으며, 조건이 나빠지면 내생포자를 만들 수 있는 그람양성 계통의 세균이다. 다만 학명에는 주의가 필요하다. “Paenibacillus vortex”라는 이름은 여러 연구에서 사용되고 있지만, 2026년 8월 현재 국제원핵생물명명규약에 따라 유효하게 공표된 종명은 아니다. 따라서 V453이라는 특정 연구 균주에서 관찰된 특징을 Paenibacillus속 전체의 공통 특성으로 확대해서는 안 된다.

수많은 편모가 세포 무리를 하나의 소용돌이로 묶는다

소용돌이 하나는 세균 한 마리가 빙글빙글 돌면서 만드는 자국이 아니다. 수십 개에서 많게는 수천 개의 세포가 느슨한 뗏목 같은 집단을 이루고 공동의 중심 주위를 회전한다. 2008년 실시간 현미경 연구에서는 움직이는 세포들이 빠르게 연결됐다가 다시 떨어지는 모습과 함께 여러 세포의 편모가 서로 얽혀 집단의 결합과 운동에 관여하는 장면이 관찰됐다. 편모는 회전해 추진력을 만드는 가느다란 운동기관이다. 세포들이 가까이 모이면 각 편모가 만들어 내는 힘과 주변 액체의 흐름, 세포끼리의 충돌이 합쳐져 개별 세포의 움직임보다 큰 회전 운동이 형성된다.

 

집단 안의 세포가 모두 같은 길이를 갖는 것도 아니다. 일부 세포는 분열하지 않은 채 길게 늘어나 필라멘트 형태가 되고, 다수의 짧은 세포와 섞여 움직인다. 2013년 영상 분석에서는 긴 세포가 주변 세포의 방향을 맞추고 비교적 안정적인 소용돌이 흐름을 유지하는 데 관여할 가능성이 제시됐다. 긴 세포가 물리적인 골격처럼 작용하고 그 사이를 짧은 세포들이 빠르게 오가면서 회전 집단이 유지된다는 설명이다.

 

편모 형성을 방해하는 물질을 배지에 넣으면 세포의 성장은 계속돼도 집락이 표면을 가로질러 이동하는 스워밍은 멈춘다. 스워밍은 편모를 가진 많은 세포가 수분이 있는 표면에서 함께 이동하는 현상이다. 따라서 소용돌이무늬는 세포가 증식하면서 바깥쪽으로 밀려난 흔적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능동적인 편모 운동과 세포 사이의 물리적 연결이 반드시 필요하다.

배지의 단단함이 집단의 이동 방식을 바꾼다

V453의 무늬는 유전자에 완성된 그림처럼 저장돼 있지 않다. 같은 균주라도 배지의 수분과 단단함, 영양분의 종류와 농도, 온도, 처음 접종한 세포 수에 따라 전혀 다른 형태를 만든다. 2008년 연구에서 V453은 한천 농도 약 0.3~2.2%의 넓은 범위에서 이동했지만, 한천 농도가 1%보다 높은 비교적 단단한 배지에서는 세포들이 밀집한 회전 집단이 두드러졌다. 대표적인 실험 조건에서는 지름 약 75 마이크로미터인 소용돌이가 관찰됐으며, 내부 세포들은 초당 약 10 마이크로미터의 속도로 회전했다.

 

소용돌이 집단은 바깥쪽으로 전진하면서 뒤에 세포들이 이어진 길을 남긴다. 이 길에서 새로운 이동 집단이 갈라져 나오거나 서로 다른 소용돌이가 합쳐지면서 가지가 뻗은 집락 구조가 만들어진다. 반대로 수분이 많고 부드러운 배지에서는 둥근 소용돌이보다 길게 연결된 ‘뱀’ 모양의 세포 행렬이 잘 나타난다. 여러 행렬은 서로 이어진 그물망처럼 이동하고, 다른 행렬과 충돌하기 전에 진행 방향을 바꾸기도 한다.

 

이미 세균이 지나간 자리에는 세포가 분비한 물질이 남고 영양분과 수분의 양도 달라진다. 이러한 환경 변화가 뒤따르는 집단의 경로 선택에 영향을 줄 것으로 추정되지만, 세균들이 정확히 어떤 화학 신호를 감지해 충돌을 피하는지는 모두 밝혀지지 않았다. 배지 위의 정교한 무늬는 이 세균이 언제나 만드는 고정된 문양이 아니라, 세포 운동과 성장, 물질 확산, 표면의 물리적 성질이 특정 조건에서 맞물려 나타난 결과다.

같은 유전자를 가진 세포도 서로 다른 역할을 맡는다

하나의 집락을 이루는 세포들은 대부분 같은 유전체를 지니지만 모두 똑같이 행동하지 않는다. 어떤 세포는 길게 자라 집단의 배열을 유지하고, 어떤 세포는 편모를 활발하게 움직이며 새로운 영역을 탐색한다. 2013년 연구에서는 항생제에 노출된 집락에서 이동성이 매우 높은 하위 집단이 증가하는 현상이 관찰됐다. 이 세포들은 편모가 많고 빠르게 이동했으며, 항생제에 견디는 성질도 보였다. 이 현상은 항생제 내성 돌연변이가 집단 전체에 퍼진 경우와 달랐다. 항생제가 제거되면 세포 집단의 구성과 성질이 다시 달라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동일한 유전체를 지닌 세포가 환경에 따라 서로 다른 생리 상태를 선택하는 표현형 가변성으로 해석된다. 일부 세포가 위험한 구역을 먼저 통과하거나 집락을 새로운 장소로 옮긴다면 모든 세포가 한꺼번에 같은 위험에 노출되는 것을 줄일 수 있다.

 

2010년에 공개된 V453 유전체는 약 638만 염기쌍 규모로, 주변 환경을 감지하고 유전자 발현을 조절하는 단백질과 다양한 물질 수송체를 다수 갖추고 있다. 유기물을 분해하는 효소와 미생물 사이의 경쟁에 관여할 수 있는 물질의 합성 유전자도 확인됐다. 이러한 구성은 영양분과 수분이 고르게 분포하지 않은 토양이나 식물 뿌리 주변에서 환경 변화를 감지하고 집단의 상태를 조절하는 데 유리할 수 있다.

 

이 세균의 행동을 설명하면서 ‘지능’이라는 표현이 사용되기도 하지만, 사람이나 동물의 사고 능력과 같은 뜻으로 받아들이면 곤란하다. 세포들은 전체 집락의 지도를 보거나 완성될 무늬를 예상하지 않는다. 각각의 세포가 가까운 곳의 영양분, 분비물, 표면 상태와 이웃 세포의 움직임에 반응할 뿐인데, 그 국소적인 반응들이 이어지면서 집락 전체에서는 질서 있는 행동이 나타난다.

다른 미생물까지 태우고 이동하는 세균 집단

V453의 이동 집단은 스스로 움직이지 못하는 다른 세균을 집단 안에 끌어들여 함께 운반할 수 있다. 2015년 연구에서는 운반되는 세균이 주변 표면을 더 잘 젖게 하는 물질을 만들면 V453의 이동 거리도 늘어나는 현상이 확인됐다. 움직이는 세균은 동료가 아닌 다른 종에게 이동 수단을 제공하고, 함께 실려 가는 세균은 이동하기 좋은 환경을 만드는 방식으로 일시적인 협력 관계가 형성된 것이다. 곰팡이와 만났을 때는 서로 다른 이동 방식이 결합되기도 한다. 세균 무리는 곰팡이 포자를 다른 장소로 옮길 수 있고, 길게 뻗은 곰팡이 균사는 세균이 직접 건너기 어려운 마른 틈을 이어 주는 다리가 될 수 있다. 실험실에서는 두 생물이 함께 있을 때 각각 혼자서는 도달하기 어려운 영역으로 퍼지는 모습이 관찰됐다. 토양처럼 물길이 자주 끊기고 영양분이 군데군데 모여 있는 환경에서는 이런 관계가 새로운 서식지를 찾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렇다고 이 세균을 농업이나 미생물 운반 기술에 바로 이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유익한 미생물을 원하는 장소로 옮길 가능성이 있는 반면, 병원성 세균이나 곰팡이 포자까지 함께 확산시킬 위험도 있다. 실제 토양에서는 수많은 미생물과 식물 뿌리, 수분 변화가 동시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한천배지에서 관찰된 이동 결과가 그대로 재현된다고 단정할 수 없다.

 

배지 위에 남은 소용돌이 무늬를 보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질서에는 반드시 그것을 설계하는 지휘자가 있어야 한다는 인간의 직관이 의외로 쉽게 흔들릴 수 있다는 것이었다. 세균 한 마리는 자신이 지나간 자리에 어떤 그림이 완성될지 알지 못한다. 그저 이웃과 부딪히고 편모를 움직이며 눈앞의 환경 변화에 반응할 뿐인데, 수많은 반응이 겹치자 사람이 일부러 그린 것 같은 구조가 나타났다. 복잡한 결과를 볼 때마다 거창한 명령 체계부터 찾으려 했던 시선보다, 작은 움직임들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전체의 질서를 만든다는 설명이 오히려 더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참고자료

  • Ingham, C. J.·Ben-Jacob, E., “Swarming and Complex Pattern Formation in Paenibacillus vortex Studied by Imaging and Tracking Cells”, BMC Microbiology, 2008. 원문 보기
  • Sirota-Madi, A. 외, “Genome Sequence of the Pattern Forming Paenibacillus vortex Bacterium Reveals Potential for Thriving in Complex Environments”, BMC Genomics, 2010. 원문 보기
  • Roth, D. 외, “Identification and Characterization of a Highly Motile and Antibiotic-Refractory Subpopulation Involved in the Expansion of Swarming Colonies of Paenibacillus vortex”, Environmental Microbiology, 2013. 원문 보기
  • Finkelshtein, A. 외, “Bacterial Swarms Recruit Cargo Bacteria to Pave the Way in Toxic Environments”, mBio, 2015. 원문 보기
  • List of Prokaryotic names with Standing in Nomenclature, “Paenibacillus vortex”, DSMZ, 2026년 8월 확인. 분류 정보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