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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일본 연구진은 방사선에 강한 미생물을 찾기 위해 온천수에 감마선을 조사한 뒤 살아남은 세균을 배양했다. 그 과정에서 붉은 집락을 만드는 균주 P-1이 분리됐고, 1973년 Arthrobacter radiotolerans라는 이름으로 보고됐다. 이후 세포벽 성분과 지질, 계통 관계가 기존 Arthrobacter와 크게 다르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1988년 신설된 Rubrobacter속으로 옮겨졌다. 현재의 정식 학명은 Rubrobacter radiotolerans다.
속명 Rubrobacter는 ‘붉은 세균’, 종소명 radiotolerans는 ‘방사선을 견디는’이라는 뜻이다. 이 세균은 Actinomycetota문에 속하는 산소호흡성 그람양성 세균으로 포자를 만들지 않는다. 세포는 성장 단계에 따라 짧은 막대와 둥근 형태가 함께 나타나며 운동성은 없다. 약 45℃ 부근에서 잘 자라는 약한 호열성 세균이고, 염분과 자외선, 건조, 산화 스트레스에도 강하다.
온천에서 살던 세균은 왜 방사선에도 강할까
온천은 물이 풍부해 건조한 사막과는 거리가 있어 보이지만 세균에게 항상 편안한 환경은 아니다. 높은 온도는 단백질의 구조를 흔들고 세포막을 불안정하게 만들며 산화 스트레스를 증가시킨다. 수온과 수량이 변하는 가장자리의 생물막은 건조와 재습윤을 반복할 수도 있다. R. radiotolerans가 열과 건조, 활성산소를 견디도록 발달시킨 방어 체계가 이온화 방사선에도 효과를 냈을 가능성이 있다.
감마선은 DNA를 직접 끊기도 하지만 세포 속 물을 분해해 반응성이 큰 활성산소종을 만든다. 활성산소종은 DNA뿐 아니라 DNA를 복구해야 할 효소와 세포막까지 산화한다. 이 세균은 수 킬로그레이 구간의 감마선에 노출돼도 높은 생존율을 유지하며, 조건에 따라 방사선 내성으로 유명한 Deinococcus radiodurans와 비슷하거나 더 넓은 초기 생존 구간을 보인 연구도 있다. 다만 선량률과 배양 상태가 다른 실험의 수치를 그대로 비교해 어느 종이 절대적으로 더 강하다고 순위를 매기기는 어렵다.
자연 온천에서 이 정도 감마선이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방사선 자체가 직접적인 선택압이었다고 단정하기보다 열과 건조, 산화 스트레스에 대한 적응이 방사선 저항성으로 이어졌다는 설명이 더 설득력 있다. 같은 Rubrobacter속의 여러 종이 온천과 건조한 암석, 사막 토양, 건축물 표면에서 발견되는 것도 이 계통이 복합적인 환경 스트레스에 적응했음을 보여준다.
붉은 카로티노이드는 세포를 보호하는 한 겹의 방어선이다
R. radiotolerans의 붉은색은 카로티노이드 색소에서 나온다. 카로티노이드는 빛과 활성산소의 에너지를 흡수하거나 반응성이 낮은 상태로 바꾸어 세포막의 산화를 줄일 수 있다. 이 종에서는 박테리오루베린 계열을 포함한 붉은색 C50 카로티노이드가 연구됐다. 길게 이어진 이중결합 구조가 활성산소와 반응해 지질과 단백질이 손상되는 것을 완화할 수 있다.
색소가 방사선을 납판처럼 차단하는 것은 아니다. 감마선은 세포를 통과해 DNA를 손상시킬 수 있으며 색소가 모든 손상을 막지는 못한다. 카로티노이드는 방사선 조사 뒤 생기는 산화 스트레스를 줄여 복구효소와 세포막이 기능을 유지하도록 돕는 여러 방어 요소 가운데 하나로 보는 편이 정확하다.
망간을 포함하는 초과산화물 불균등화 효소도 보호에 관여한다. 이 효소는 대사와 방사선 조사 과정에서 생기는 초과산화물 라디칼을 과산화수소로 바꾸고, 다른 효소들이 과산화수소를 다시 물과 산소로 처리한다. 2011년 연구에서는 R. radiotolerans의 망간 초과산화물 불균등화 효소를 정제해 높은 온도와 일부 스트레스 조건에서도 활성이 유지되는 특성을 확인했다. 붉은 색소와 항산화효소, 세포 내 금속 조절이 함께 단백질 산화를 줄이는 것으로 해석된다.
DNA가 덜 끊어지는 보호와 손상 뒤 수선이 함께 작동한다
1999년 방사선을 조사한 세포의 DNA를 분석한 연구에서는 같은 선량을 받은 다른 세균보다 R. radiotolerans의 DNA 절단 빈도가 낮게 나타났다. 조사 뒤 배양 과정에서 잘린 DNA가 빠르게 원래 크기로 돌아오는 현상은 뚜렷하지 않았다. 연구진은 이 세균의 강한 내성이 손상된 DNA를 매우 빠르게 다시 붙이는 능력보다 처음부터 DNA 손상을 줄이는 보호 작용과 더 관련 있을 가능성을 제시했다.
그렇다고 DNA 복구가 중요하지 않다는 뜻은 아니다. 포르투갈 온천에서 분리된 같은 종의 RSPS-4 균주 유전체가 2014년 분석되면서 상동 재조합과 염기절제수선, 뉴클레오타이드절제수선에 필요한 주요 유전자들이 확인됐다. 상동 재조합은 비슷한 DNA 사본을 주형으로 이용해 끊어진 구간을 복원하는 방법이고, 절제수선은 손상된 염기를 포함한 짧은 구간을 잘라 낸 뒤 다시 합성하는 방식이다.
RSPS-4의 유전체는 약 326만 염기쌍이며 하나의 염색체와 세 개의 플라스미드로 구성된다. 비상동말단연결에 필요한 전형적인 유전자 조합은 확인되지 않았지만 여러 항산화효소와 단백질 수선, 삼투압 보호물질 생산 관련 유전자들이 들어 있었다. 표준 균주 P-1에서 얻은 방사선 실험과 RSPS-4의 유전체 분석은 서로 다른 균주를 대상으로 했으므로 모든 세부 특성이 완전히 같다고 가정해서는 안 된다.
붉은 세균의 방어 물질을 어디에 이용할 수 있을까
고온과 산화 스트레스에서도 작동하는 효소는 산업 공정에 활용할 가능성이 있다. 일반적인 효소가 쉽게 변성되는 온도에서 반응을 유지할 수 있고, 방사선이나 산화제가 존재하는 환경에서 쓰는 생물센서와 정화 공정에도 연구 가치가 있다. 카로티노이드는 천연 색소와 항산화 소재 후보가 될 수 있지만 생산량과 정제 비용, 빛과 열에 대한 안정성, 독성 검증이 필요하다. 방사성 폐기물 정화에서도 방사선 내성 자체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세균이 제거하려는 금속이나 유기오염물질을 실제로 변환할 대사 능력을 지녀야 하고, 높은 염도와 극단적인 pH에서도 활동해야 한다. R. radiotolerans의 유전체에서 여러 스트레스 대응 유전자가 발견됐다는 사실은 가능성을 보여줄 뿐 실제 저장시설에 투입할 수 있다는 허가나 현장 효과를 의미하지 않는다.
붉은 색소나 항산화효소가 사람의 방사선 피해를 막거나 DNA를 복구한다는 식의 주장도 경계해야 한다. 세균에서 확인된 물질의 항산화 활성과 인체에서의 안전성·흡수·치료 효과는 서로 다른 단계의 문제다. 먼저 세포와 동물 수준의 검증이 필요하며 식품이나 의약품으로 사용할 경우에는 별도의 임상시험과 규제 절차를 거쳐야 한다.
루브로박터를 살펴보며 인상 깊었던 것은 붉은색이 강한 방사선을 막아 주는 마법의 갑옷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색소가 활성산소를 줄이고 효소가 손상 물질을 처리하며 DNA 수선 경로가 남은 상처를 관리하는 여러 과정이 겹쳐져야 비로소 세포 하나가 살아남는다. 처음에는 겉으로 드러나는 붉은색이 가장 눈에 띄었지만, 실제 생존을 떠받치는 것은 보이지 않는 수많은 작은 방어선이었다는 사실이 그 색보다 오래 기억에 남았다.
참고자료
- Yoshinaka, T.·Yano, K.·Yamaguchi, H., “Isolation of a Highly Radioresistant Bacterium, Arthrobacter radiotolerans nov. sp.”, Agricultural and Biological Chemistry, 1973. 원문 정보 보기
- Suzuki, K. 외, “Chemotaxonomic Characterization of a Radiotolerant Bacterium, Arthrobacter radiotolerans: Description of Rubrobacter radiotolerans gen. nov., comb. nov.”, FEMS Microbiology Letters, 1988. 원문 정보 보기
- Terato, H. 외, “DNA Strand Breaks Induced by Ionizing Radiation on Rubrobacter radiotolerans, an Extremely Radioresistant Bacterium”, Microbiological Research, 1999. 원문 정보 보기
- Egas, C. 외, “Complete Genome Sequence of the Radiation-Resistant Bacterium Rubrobacter radiotolerans RSPS-4”, Standards in Genomic Sciences, 2014. 원문 보기
- List of Prokaryotic names with Standing in Nomenclature, “Rubrobacter radiotolerans”, DSMZ, 2026년 9월 확인. 분류 정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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