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철분이 많은 샘이나 지하수 배관을 살펴보면 붉은 갈색 침전물 사이에서 가느다란 리본이 비틀린 듯한 구조가 발견될 때가 있다. 녹이 슨 철사인가?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 오랫동안 이 흔적은 세균 자체보다 먼저 사람들의 눈에 들어왔다. 독일의 박물학자 크리스티안 고트프리트 에렌베르크는 1838년 이러한 철 침전 구조를 만드는 미생물을 Gallionella ferruginea로 기록했다. 종소명 ferruginea는 녹슨 철과 같은 색을 뜻한다.
G. ferruginea는 현재 Pseudomonadota문, Gallionellaceae과에 속하는 담수성 철산화세균으로 분류된다. 세포는 대략 폭 0.5~0.8마이크로미터, 길이 0.8~1.5 마이크로미터인 콩팥 또는 초승달 모양이며, 세포의 오목한 면에서 길고 비틀린 자루가 뻗어 나온다. 이 자루는 세균의 몸이 길어진 것이 아니라 세포가 철을 산화하면서 만든 산화철과 유기 섬유가 함께 쌓인 세포 밖 구조다.
철과 산소가 살짝 만나는 좁은 경계에서 산다
G. ferruginea가 주로 사는 곳은 철(II)이 녹아 있는 지하수가 산소를 포함한 물과 만나는 경계다. 철(II)은 산소가 충분하면 세균의 도움 없이도 빠르게 산화된다. 반대로 산소가 전혀 없으면 철에서 나온 전자를 받아 줄 물질이 없어 세균도 호흡할 수 없다. 이 때문에 갈리오넬라는 산소가 아주 적게 존재하는 미호기성 환경에서 유리하다. 샘의 출구, 우물과 배수로, 지하수층, 습지의 철 침출수처럼 환원된 지하수와 산소가 섞이기 시작하는 지점이 대표적인 서식처다.
세균은 철(II)을 철(III)으로 산화하면서 전자를 얻고, 산소를 최종전자수용체로 사용해 에너지를 만든다. 철(II) 한 분자가 내놓는 에너지는 많지 않으므로 상당한 양의 철을 처리해야 세포를 만들 수 있다. 탄소는 주로 이산화탄소를 고정해 마련한다. 유기물을 먹지 않고 무기물의 산화에서 에너지를 얻어 몸을 만드는 화학무기독립영양 생활이다. 일부 배양 연구에서는 적은 양의 유기물이 성장을 돕는 혼합영양 가능성도 확인됐지만, 대표적인 생태 기능은 중성에 가까운 물에서 이루어지는 철 산화다.
철 산화의 첫 단계에는 세포 바깥쪽 막에 있는 c형 사이토크롬 계열 단백질이 관여하는 것으로 연구되고 있다. 사이토크롬은 철을 포함한 헴을 이용해 전자를 주고받는 단백질이다. 다만 G. ferruginea는 배양하기 까다롭고 유전학적 조작도 쉽지 않아, 철에서 산소까지 전자가 이동하는 모든 경로가 한 종에서 완전히 실험된 것은 아니다. 가까운 Gallionellaceae 계통의 유전체와 생리 연구에서 얻은 결과를 이 종의 작동 원리로 설명할 때는 직접 확인된 사실과 비교유전체에 따른 추론을 구분해야 한다.
산화된 철을 세포에 붙이지 않고 자루로 밀어낸다
철(II)이 철(III)으로 산화되면 중성 부근의 물에서는 철(III) 산화수산화물이 쉽게 침전한다. 이 물질이 세포 표면에 무작위로 달라붙으면 영양분과 기체의 이동을 막아 세균이 광물 속에 갇힐 수 있다. 갈리오넬라는 세포의 특정 지점에서 유기 섬유를 내보내고 그 위에 산화철을 침전시켜, 생성물을 세포에서 떨어진 방향으로 정리한다.
세포가 성장하고 분열하는 동안 두 갈래의 섬유 묶음이 서로 꼬이면서 납작한 리본 모양의 자루가 길어진다. 환경에 남은 자루는 세포보다 훨씬 오래 보존되기 때문에 물 시료에서 나선형 철 구조가 많이 발견돼도 살아 있는 갈리오넬라 세포의 수와 정확히 일치하지는 않는다. 비슷한 자루를 만드는 다른 철산화세균도 있으므로 형태만으로 종을 확정하기보다 유전자 분석과 환경 조건을 함께 확인해야 한다.
1995년 자루를 만드는 균주와 만들지 않는 균주를 비교한 연구에서는 자루가 산소와 철의 화학반응에서 생기는 반응성 물질로부터 세포를 보호하고, 표면에 부착해 적절한 위치를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결과가 나왔다. 자루가 세포 표면의 철 피막 형성을 줄인다는 설명도 설득력이 있다. 하지만 모든 기능이 하나의 실험으로 확정된 것은 아니다. 광물 생성물을 멀리 보내는 효과와 부착, 산화 스트레스 완화가 함께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붉은 철 침전물은 생태계의 기록이 된다
갈리오넬라가 만든 철 산화물은 표면적이 크고 반응성이 높다. 인산염과 비소, 납을 비롯한 여러 물질이 이 표면에 흡착될 수 있어 철산화세균의 활동은 철 순환뿐 아니라 다른 원소의 이동에도 영향을 준다. 철이 풍부한 습지에서는 처음에 나선형 자루를 만드는 Gallionellales 계통이 늘었다가 시간이 지나며 관 모양 철집을 만드는 Leptothrix 계통이 우세해지는 천이도 관찰됐다. 물의 흐름과 산소, 철 농도가 달라지면 같은 장소에서도 철 침전물을 만드는 주체가 바뀔 수 있다는 뜻이다.
광물이 된 자루는 세포가 사라진 뒤에도 퇴적물에 남아 과거의 미생물 활동을 보여주는 생물기원 구조가 될 수 있다. 다만 암석에서 비슷한 나선형 철 구조가 발견됐다는 이유만으로 생명 흔적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무생물적인 광물 성장도 유사한 형태를 만들 수 있으므로 구조의 규칙성, 유기물의 흔적, 동위원소와 주변 지질 조건을 함께 분석해야만 한다.
2025년 발표된 비교유전체 연구에서는 담수에 주로 분포한다고 알려진 Gallionella 계통이 북극 중앙해령의 심해 열수 환경에서도 검출됐다. 그러나 열수구에서 관찰된 철 자루를 모두 갈리오넬라가 만들었다고 볼 수는 없었다. 함께 존재한 해양성 철산화세균 Mariprofundus 계통이 자루 형성 유전자를 지닌 반면, 일부 해양 Gallionella 유전체에는 뚜렷한 자루 형성 유전자가 확인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선형 철 자루는 강력한 단서지만 특정 속의 독점적인 서명은 아닐 수 있다.
식수 정화에는 도움이 되지만 배관에서는 골칫거리가 된다
지하수 속 철은 독성보다 맛과 냄새, 붉은 얼룩, 탁도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그냥 먹으면 큰 문제를 일으키기 때문에 정수시설에서는 철산화세균이 철(II)을 고체 철(III) 산화물로 바꾸게 한 뒤 여과층에서 제거하는 생물학적 제철 공정을 이용할 수 있다. 화학 산화제를 적게 사용하고 비교적 낮은 온도와 중성 조건에서 철을 제거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생성된 철 산화물이 비소 같은 오염물질을 함께 붙잡을 가능성도 연구되고 있다.
같은 능력이 우물과 배관 안에서는 문제가 된다. 세균이 만든 자루와 철 침전물이 점액성 생물막에 쌓이면 물의 흐름이 줄고 필터와 관이 막힐 수 있다. 갈색 물이나 금속 맛이 나타나며, 침전물 아래에서 다른 미생물이 자랄 공간도 생긴다. 갈리오넬라 자체는 일반적인 인체 병원균으로 분류되지 않지만, 설비 관리에서는 철 농도와 산소 유입, 생물막 형성을 함께 조절해야 한다.
갈리오넬라의 나선형 자루를 들여다보며 인상 깊었던 것은, 우리가 녹이나 배관 찌꺼기로만 여겼던 물질이 세균에게는 살아가기 위해 정교하게 밀어낸 대사산물이라는 점이었다. 철을 이용해 에너지를 얻으면서도 그 결과 생긴 광물에 자신이 파묻히지 않도록 세포 밖으로 가지런히 쌓아 올린 흔적이 인간의 눈에는 작은 조각 작품처럼 남는다. 누군가에게는 제거해야 할 붉은 오염물이고 누군가에게는 오래된 생명 활동의 기록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니, 이제 주변의 평범한 녹빛 침전물도 전과는 조금 다르게 보일 것 같기는 하다.
참고자료
- Hallbeck, L.·Ståhl, F.·Pedersen, K., “Phylogeny and Phenotypic Characterization of the Stalk-Forming and Iron-Oxidizing Bacterium Gallionella ferruginea”, Journal of General Microbiology, 1993. 원문 정보 보기
- Hallbeck, L.·Pedersen, K., “Benefits Associated with the Stalk of Gallionella ferruginea, Evaluated by Comparison of a Stalk-Forming and a Non-Stalk-Forming Strain and Biofilm Studies in Situ”, Microbial Ecology, 1995. 논문 정보 보기
- Emerson, D. 외, “Comparative Genomics of Freshwater Fe-Oxidizing Bacteria: Implications for Physiology, Ecology, and Systematics”, Frontiers in Microbiology, 2013. 원문 보기
- Hribovšek, P. 외, “Adaptation Strategies of Iron-Oxidizing Bacteria Gallionella and Zetaproteobacteria Crossing the Marine–Freshwater Barrier”, mBio, 2025. 원문 보기
- List of Prokaryotic names with Standing in Nomenclature, “Gallionella ferruginea”, DSMZ, 2026년 8월 확인. 분류 정보 보기
'박테리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중금속 속에서 살아가는 쿠프리아비두스와 자연에서 만들어지는 금 (1) | 2026.09.05 |
|---|---|
| 얼음과 심해에서도 살아가는 콜웰리아의 극저온 생존 전략 (0) | 2026.09.04 |
| 다른 세균에 달라붙어 영양분을 빼앗는 미카비브리오의 사냥법 (0) | 2026.09.03 |
| 세균으로 콘크리트 균열을 메울 수 있을까? 스포로사르시나의 특별한 능력 (0) | 2026.09.02 |
| 심해에서 철을 산화하며 살아가는 마리프로푼두스가 남기는 흔적 (0) | 2026.09.02 |
